- 보수집회, 진보 성향 헌재 재판관 향해 원색적 비난…정치권도 거들어, 전문가 "다양한 견해와 가치로 헌재 구성해야"…"임명 절차 꼼꼼히 따져야" 지적도,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 4차 변론기일인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인근에서 지지자들이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자들과 여권이 탄핵 심판을 맡은 헌법재판관들의 과거 행적을 걸고넘어지며 판결 불복의 포석을 깔고 있는 분위기다.
법조계에선 판사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판결에 불복하는 '사법 불신' 확산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최근 보수단체에서 여는 윤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에서는 헌법재판관들에 대한 원색적인 비난이 나오고 있다.
이들은 야당이 추천한 헌법재판관들이 편향적인 판결을 할 것이라며 날을 세우고 있다.
[尹 지지자들, "좌파 성향 판사" 공격…국민의힘도 정치 편향 문제 제기]
지난 달 23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인근에서 열린 보수집회에서는 문형배 헌재소장 권한대행이 "민주당과 유착돼 있다고 의심된다"는 발언이 나왔다.
전날 같은 장소에서 윤 대통령 지지자들은 "좌파 성향 판사들에 의해 국가 반란이 이뤄지고 있다"는 손팻말을 들었다.
정치권도 강성 지지자들의 사법 불신을 거들고 있다.
국민의힘은 설 연휴 기간 진보성향 판사 연구 모임인 '우리법연구회' 출신인 문형배·이미선·정계선 헌법재판소 재판관의 정치적 편향성 문제를 제기했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문 권한대행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친분설을 제기하자, 헌법재판소는 과거 문 권한대행이 2022년 이 대표가 경기도지사로 재임하던 시절 경기도와 남양주시의 권한쟁의심판에서 남양주시의 손을 들어준 판결을 언급하며 이를 일축했다.
헌법재판소는 또 지난 달 31일 정례 브리핑에서 "정치권과 언론에서 재판관 개인 성향을 획일적으로 단정 짓고 탄핵 심판의 본질을 왜곡하는 경우가 발생했다"며 "사법부의 권한 침해 가능성에 대해 우려를 표한다"고 밝혔다.
사법 불신은 여야를 가리지 않는다. 이 대표가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에서 유죄를 선고받은 후 야권 인사들은 '사법 살인, '정치 판결'이라며 비판을 쏟아낸 바 있다.
[전문가, "다양한 이념과 가치관 헌법으로 해석해야"…"법관 양심에 따른 판결 필요해"]
전문가들은 지지 세력의 '사법부 공격'은 "탄핵 심판의 정당성과 객관성을 흔드려는 의도"라며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선택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교수는 "개별적 사건 때문에 우리나라 사법부 전체에 대한 불신을 초래할 만한 주장을 하는 건 굉장히 부적절하다"며 "수많은 사람이 법원에 가서 재판을 받아야 하는데 각 재판부를 구성하는 법관이 사적인 관계에 있다며 문제를 삼으면 정상적으로 재판이 진행될 수 없다"고 밝혔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정치권의 공격은 탄핵 후 책임론이 쏟아질 것을 모면하기 위한 자기 정치의 일환"이라면서 "정치적 비판을 면하기 위한 사전 포석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일각에선 대통령과 국회, 대법원장이 각각 헌법재판관 3명을 지명하는 현행 선출 방식상 정치적 편향 문제가 제기될 수밖에 없는 구조적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에 대해선 전문가들의 의견이 엇갈렸다.
한 교수는 "헌법에서 구성을 대통령, 국회, 대법원장이 각각 3명을 지명하도록 한 것도 다양한 정치적 견해와 가치를 가진 사람들로 헌재를 구성하겠다는 취지를 담은 것"이라며 "다양한 이념과 가치관을 헌법으로 해석하고 9명이 합의에 이르러 결정한다면 헌법의 바람직한 결과"라고 강조했다.
판사 출신 문유진 변호사(법무법인 판심)은 정진석 대통령실 비서실장이 페이스북을 통해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다가 항소심에서 벌금형으로 감형된 사례를 언급하며 "법관은 정당에 가입하지 못하며 정치적 성향이 아닌, 법관의 양심에 따라 판결할 것이 요구된다"고 지적했다.
당시 1심을 맡은 박병곤 판사는 고교·대학 시절과 법관 임용 이후에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여권을 비판하고 야권을 옹호하는 글을 올려 판사 개인의 정치 성향이 선고에 영향을 미쳤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에 대법원이 "해당 법권이 임용 후 SNS에 게시한 일부 글 중 정치적 견해로 인식될 수 있는 부분에 관해 소속 법원장을 통해 엄중한 주의를 촉구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문 변호사는 "실제 속마음까지 알 수는 없더라도 적어도 공개적 석상에서 정치적 성향을 표명한 사람은 지양해야 함은 분명하다"며 "사법 불신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헌법재판관 임명 절차부터 청문회에서 꼼꼼하게 검증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말했다.
임혁진 기자 polyhj@naver.com